번호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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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 문화재와 역사 |
투어번호 | C0005 |
장소 | 하정 유관에 얽힌 이야기 |
주요설명 | 청백리의 표상 |
상세설명 | 선왕조 때 대표적인 청백리로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진 하정 유관선생 댁이 현재 신설동 근처에 있었다. '청백리'라는 말은 한마디로 '깨끗한 관리', 요즈음 말로 바꾸면 부정부패와는 거리가 먼 정직한 성품의 모범공무원을 가리키는 말이다. 하정 유관선생은 문화유씨(柳氏) 명문가 출신으로 고려 중기의 유명한 문신(文臣) 유공권의 후예이며, 그의 증조 할아버지 또한 좌우위상장군 유성비였으니 그의 가문은 그야말로 문무(文武)을 겸한 명문가라 하겠다. 유관 공은 고려 말 충목왕(재위 1337∼1348) 때 태어나 공민왕 20년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한 이래 고려조가 망할 때까지 20년 동안 꾸준히 관직에 있으면서 모나지 않는 둥글둥글한 성격과 공정한 처사로 동료 관원들은 물론이고 많은 백성들로부터도 추앙을 받았다. 1392년 조선이 개국되어 병조이랑으로 다시 관직에 올라 세종 9년에 그가 81세로 관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태조, 정종, 태종, 세종 네 임금을 모시고 성균관 대사성, 강원도·전라도 관찰사(요즈음 관직으로는 도지사)를 역임했다. 그의 한 점 티와 부끄럼이 없는 행동이며 검소한 생활태도가 많은 이들의 신망을 불러 일으켰으며 국왕 이하 모든 관민이 그를 국노(國老)로 받들고 존경하기에 이르렀다. |